할 일 관리 시스템 장단점과 한계
할 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뛰어난 성과를 창출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어렵지 않은 사람은 집중력이 뛰어난 소수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론과 도구를 사용하여 그 부족함을 메운다.
대표적인 도구가 아이젠하워 매트릭스와 GTD다.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는 일을 중요도와 긴급성에 따라 4 영역으로 우선 순위를 나눈다. 핵심은 건강 관리, 학습 등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에 사용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합리적이지만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자칫하면 자질구레한 일이 왕창 밀리는 경우나, 반대로 주요한 일을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게다가 종종 목록이 포화 상태가 되면 혼란이 생기거나, 관리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GTD는 일의 중요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닥치는대로 빠르게 처리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핵심은 일을 빠르게 분류하는 것과 여러 단계가 있는 일(프로젝트)을 작은 단위로 분해하는 것이다. 이를 ‘다음 행동 목록’에 넣고 순서대로 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일을 좀 무시하는 듯 하지만 확실히 과제 처리 효율성은 높다.
어떤 방법이 더 좋을까? 결론은 없다. 하는 일에 따라 다를 것이고, 사람의 특성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 방법이든 잘 할 것이다. 다만 나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결핍된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정착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을 잘하거나 닥치는대로 빨리 처리하지도 못했고, 그저 과제를 분류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는 일을 미룬다. 미루다 보면 할 일의 목록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그러면 결국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GTD의 장점을 취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까?
사실 방법론이나 도구는 일 처리를 조금 지원하는 데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제대로 일하는 것은 결국 집중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 8월 20일, 내게 성인 ADHD란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황당하고, 참담했지만 다행스러운 것도 있었다. 내가 일을 미루거나 여기저기 깔아놓던 것이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었다고 마누라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큰 행운은 병인 걸 알았으니 치료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집중력을 높여주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꽤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듯 안 그런 듯 하다. 두 번째는 스스로의 행동을 인지(관찰, 메타인지 등)하고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지 행동 치료’라고 한다. 관련 책을 몇 권 보았다. 대표적인 책이 <성인 ADHD를 위한 대처기술 안내서>다.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9월 초, 안내서를 꼼꼼하게 읽었다. 책을 통해 깨달았다. 일하는 방식을 뜯어 고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란 것을. 거기에 엄청난 노력까지 더해야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ADHD를 관리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쉽게 시작하도록 일을 작게 나눠 ‘행동목록’과 ‘일일 계획표’를 만들고, 조금 일찍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이다. 행동목록과 일일 계획표를 과하게 자주 이용하라.”
책은 할 일을 관리하는 방법을 너무 너무 너무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아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성인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집중력을 지속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겐 그 방법이 최선으로 보였다.
노션으로 할 일 관리 방식을 재설정하기로 했다. 내게 성과가 나타난다면 성인 ADHD를 가진 사람은 물론 집중력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인지행동치료’적 관점을 사용하여 만든 첫 번째 할 일 관리 방식은 다음과 같다.
-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로 ‘포괄 행동 목록’을 만들고
- 그 중 일부를 ‘일일 행동 목록’으로 옮기고
- 그 일을 일일 계획표(스케줄러)에 할당하는 것이다.
한 시간만에 뚝딱 만든 이 도구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처리된 할 일들을 수작업으로 하나 하나 다음 일정으로 옮겨야 했다. 귀찮은 일을 무지무지하게 싫어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을 중요도와 긴급성으로 우선 순위를 매기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도 내게 맞지 않았다. 닥치고 실행하는 GTD 방식이 ‘인지행동치료’에서 제안하는 방식과 궁합이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답이 나왔다. 인지행동치료적인 도구 포괄실행목록, 일일행동목록, 일일계획표를 GTD와 통합한다면 두 방식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것으로 판단했다.
인지행동치료의 개념을 추가한 GTD-플래너
구상할 때 세운 도구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이 도구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사용하게 하는 것
- 계획 수립을 도울 것
- 닥치고 실행하기를 촉진할 것
핵심 아이디어는 GTD 시스템과 인지행동치료적인 시스템을 결합하는 것이다.
노션으로 만든 GTD 템플릿은 대여섯개 이상 둘러보았지만 내 의도에 딱 맞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영감을 꽤 받았다.
특히 <Advanced GTD Dashboard in Notion>(유튜버 Keep Productive)은 이 시스템중 GTD 부분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뒤늦게 밝히자면, 노션을 사용한지 2년 반 정도 되는데 아직 초보에 가깝다. 그간 그냥 메모 앱으로 사용했다. 노션의 ㅜ자랑인 데이터베이스를 그냥 줄 있는 표로만 사용했다. 그러니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제레미강님의 책, 퍼블리 컨텐츠, 블로그도 유용했다. 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꽤 있지만.
인지행동치료적인 도구를 액션 플래너로 부르기로 했다. 합치면 GTD Action Planner, 약칭은 GTD-Planner다.
이것은 단순한 플래너가 아니다. ‘계획과 행동 활성화를 촉진하는 플래너’다.
만드는 과정부터 활용 방법까지 하나하나 포스팅해 보겠다. 아, ADHD를 가진 사람은 보통 사람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점은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