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 부족이 의미만의 문제일까?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장기간 진행되는 일은 물론, 단기간 반복되는 일도 잘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나처럼 성인 ADHD가 있다면 일을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나만 그럴까?

며칠 전, 친한 형님과 저녁을 먹으면서, 성인 ADHD 관련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내 우울한 마음도 함께. 사실 나는 위로 받고 싶었다.

원래 말을 잘하시고 명석한 분이라 중간중간 조언을 하셨는데, 그만 내가 화를 내고 말았다. 내 우울함도, ADHD도, 오랜 세월의 억울함도 모두 가볍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화를 내고는 곧 후회했다. 그 분은 지인 중에서 나를 가장 높이 평가해 주시는 분이다. 나에게 밥 한 끼 사주려고 멀리서 오신 분이었다.

헤어진 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게 병이면 세상에 병 아닌 사람이 없겠다”는 그 형님의 생각도 그리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니 연초만 되면, 아니 일년 내내 자기계발서가 그렇게 새로 출간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집중력’은 타고난다.

집중력 부족은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집중을 유지하는 힘은 저마다 다르게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럼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먼저 자신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다. 다음엔 자기에게 맞는 도구를 활용하면 두 번째 발걸음도 디딜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보다는 더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의지’가 아니라 새로운 ‘습관’으로 가능하다.

나는 ‘주의력 결핍’이란 나의 특성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문제를 알면 대처 방안도 찾을 수 있다. 대처 방안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집중력을 개선시켜 주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약이 있다는 걸 알고 내심 크게 안도했다. 앞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두어달 약을 복용해본 결과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결국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했다.

둘째, ‘인지행동치료기법’을 활용하여 내 행동을 스스로 교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습관으로 이어져야 한다. 여기엔 도구가 필요하다. 행동목록과 일일행동계획서가 그것이다.

셋째, ‘마음 다스리기’다. 주의력 결핍은 공부든 일이든 모든 것의 성과를 떨어뜨리고 그건 결국 자존감의 하락은 물론 우울증, 충동성, 중독 등 다른 정신적 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분은 명상을 권하기도 했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가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음을 체험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니 잘 안 된다. 우선은 글쓰기 연습이 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다.

목표는 ‘제 때 제대로 일하기’다. 미루지 않고.

내겐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 한다. 나와 가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까.

생산성을 높여줄 노션 GTD-플래너 만들기

할 일 관리 시스템 장단점과 한계

할 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뛰어난 성과를 창출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어렵지 않은 사람은 집중력이 뛰어난 소수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론과 도구를 사용하여 그 부족함을 메운다.

대표적인 도구가 아이젠하워 매트릭스와 GTD다.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는 일을 중요도와 긴급성에 따라 4 영역으로 우선 순위를 나눈다. 핵심은 건강 관리, 학습 등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에 사용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합리적이지만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자칫하면 자질구레한 일이 왕창 밀리는 경우나, 반대로 주요한 일을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게다가 종종 목록이 포화 상태가 되면 혼란이 생기거나, 관리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GTD는 일의 중요도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닥치는대로 빠르게 처리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핵심은 일을 빠르게 분류하는 것과 여러 단계가 있는 일(프로젝트)을 작은 단위로 분해하는 것이다. 이를 ‘다음 행동 목록’에 넣고 순서대로 빨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일을 좀 무시하는 듯 하지만 확실히 과제 처리 효율성은 높다.

어떤 방법이 더 좋을까? 결론은 없다. 하는 일에 따라 다를 것이고, 사람의 특성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 방법이든 잘 할 것이다. 다만 나는, 주의력과 집중력이 결핍된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정착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을 잘하거나 닥치는대로 빨리 처리하지도 못했고, 그저 과제를 분류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는 일을 미룬다. 미루다 보면 할 일의 목록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그러면 결국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GTD의 장점을 취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까?

사실 방법론이나 도구는 일 처리를 조금 지원하는 데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제대로 일하는 것은 결국 집중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 8월 20일, 내게 성인 ADHD란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황당하고, 참담했지만 다행스러운 것도 있었다. 내가 일을 미루거나 여기저기 깔아놓던 것이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었다고 마누라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큰 행운은 병인 걸 알았으니 치료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집중력을 높여주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꽤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듯 안 그런 듯 하다. 두 번째는 스스로의 행동을 인지(관찰, 메타인지 등)하고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지 행동 치료’라고 한다. 관련 책을 몇 권 보았다. 대표적인 책이 <성인 ADHD를 위한 대처기술 안내서>다.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9월 초, 안내서를 꼼꼼하게 읽었다. 책을 통해 깨달았다. 일하는 방식을 뜯어 고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란 것을. 거기에 엄청난 노력까지 더해야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ADHD를 관리하는 방법은 명확하다. 쉽게 시작하도록 일을 작게 나눠 ‘행동목록’과 ‘일일 계획표’를 만들고, 조금 일찍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이다. 행동목록과 일일 계획표를 과하게 자주 이용하라.”

책은 할 일을 관리하는 방법을 너무 너무 너무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아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성인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집중력을 지속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겐 그 방법이 최선으로 보였다.

노션으로 할 일 관리 방식을 재설정하기로 했다. 내게 성과가 나타난다면 성인 ADHD를 가진 사람은 물론 집중력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인지행동치료’적 관점을 사용하여 만든 첫 번째 할 일 관리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로 ‘포괄 행동 목록’을 만들고
  2. 그 중 일부를 ‘일일 행동 목록’으로 옮기고
  3. 그 일을 일일 계획표(스케줄러)에 할당하는 것이다.

한 시간만에 뚝딱 만든 이 도구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처리된 할 일들을 수작업으로 하나 하나 다음 일정으로 옮겨야 했다. 귀찮은 일을 무지무지하게 싫어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을 중요도와 긴급성으로 우선 순위를 매기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도 내게 맞지 않았다. 닥치고 실행하는 GTD 방식이 ‘인지행동치료’에서 제안하는 방식과 궁합이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답이 나왔다. 인지행동치료적인 도구 포괄실행목록, 일일행동목록, 일일계획표를 GTD와 통합한다면 두 방식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것으로 판단했다.

인지행동치료의 개념을 추가한 GTD-플래너

구상할 때 세운 도구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이 도구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사용하게 하는 것
  2. 계획 수립을 도울 것
  3. 닥치고 실행하기를 촉진할 것

핵심 아이디어는 GTD 시스템과 인지행동치료적인 시스템을 결합하는 것이다.

노션으로 만든 GTD 템플릿은 대여섯개 이상 둘러보았지만 내 의도에 딱 맞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영감을 꽤 받았다.

특히 <Advanced GTD Dashboard in Notion>(유튜버 Keep Productive)은 이 시스템중 GTD 부분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뒤늦게 밝히자면, 노션을 사용한지 2년 반 정도 되는데 아직 초보에 가깝다. 그간 그냥 메모 앱으로 사용했다. 노션의 ㅜ자랑인 데이터베이스를 그냥 줄 있는 표로만 사용했다. 그러니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제레미강님의 책, 퍼블리 컨텐츠, 블로그도 유용했다. 뭔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꽤 있지만.

인지행동치료적인 도구를 액션 플래너로 부르기로 했다. 합치면 GTD Action Planner, 약칭은 GTD-Planner다.

이것은 단순한 플래너가 아니다. ‘계획과 행동 활성화를 촉진하는 플래너’다.

만드는 과정부터 활용 방법까지 하나하나 포스팅해 보겠다. 아, ADHD를 가진 사람은 보통 사람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점은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노션 GTD 시스템 만들기

 

글 좀 써보려고 며칠이나 걸려 블로그를 세팅했는데… 그새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가 블로그는 내버려두었다.

글쓰기를 방치한 데는 약간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생긴지 어언 두 달! 그 동안 일기 비슷한 글을 여러 편 썼다. 이걸 블로그에 옮기려고 했는데, 금방 끝낼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또 ‘ADHD의 암’이라는 ‘미루기 신공’을 발휘했다. 지연될수록 현재 기록과의 거리가 자꾸 멀어지게 되는데도 말이다.

표면적인 문제는 글이 MS워드, 구글 문서, 노션에 흩어져 있는 데다가 두서도 없다는 것이다. 정리가 필요한데, 정리 못하는 게 또 ADHD 특징이니 어떡하나.

근원적인 문제는 결국 ADHD다. 블로그 포스팅은 ‘할 일’의 ‘우선 순위’에서 최상단을 차지하지 못한다. 최우선 순위의 일도 밀려 있는데 그 후순위의 일이야 말해 뭐하랴.

 

그래도, 체계적으로 일을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일 잘하는 사람’들보다는 못하지만 예전처럼 시간을 마냥 낭비하지는 않았다.

ADHD를 가진 것을 알았다는 것은 대책을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책에서는 ‘ADHD를 극복하려는 모든 노력은 반드시 실패를 경험한다’고 했다. <성인 ADHD 대처기술 안내서>(J. Russell Ramsay, Anthony L. Rostain, 2019). 그래, 노력한다고 바로 해결되는 것이면 병이 아닌 것이지!

책에서는 ‘중요한 것은 실패하더라도 다시 노력하는 과정으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노력은 이어갈 생각이다. 이미 실패는 익숙한 것이니까 두렵지도 않다. 이제 내 태도와 행동을 바꿀 것이다. 때론 쉬어가더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걸음에 속도를 내려면 나에겐 두 개의 엔진이 필요하다. 하나는 집중력을 높여주는 약을 먹는 것이다. 먹어보니 효과는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약을 먹는다고 확 달라지는 건 아니다. 조금 높아진 집중력으로 성과를 내려면 엔진이 하나 더 필요하다. 그건 ‘인지행동치료’다.

<성인 ADHD 대처기술 안내서>는 환자 스스로가 인지행동치료를 하도록 하는 매뉴얼이다. 밑줄 긋고 메모하며 열심히 봤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초기 버전은 <안내서>의 제안을 대부분 따르면서 약간의 아이디어를 더했다. 그리고 지난 한 달 가까이 사용했다.

‘노션’으로 만든 시스템은

  • ‘포괄 실행 목록’을 만들어 모든 일들을 기록하고
  • 그 중에서 오늘 할 것들을 ‘일일 실행 목록’에 옮기고
  • 일일 실행 목록에 있는 일들을 ‘일일 계획표’에 할당한 후 실행하는 것이다.

핵심은 과제를 잘 게 쪼개는 것이다. 그 시작점이 특히 중요한데, ‘안 하기가 우스울 정도로 세분화’하는 것이다.

포괄 실행 목록은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를 사용했다. 중요+긴급, 중요+완급, 사소+긴급, 사소+완급으로 일을 나눴다. 매트릭스는 금방 할 일들로 가득차 어지러웠다. 노션의 ‘토글 목록’을 사용해 깔끔하게 정리했다.

일일 실행 목록과 일일 계획표는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통합했다. 실행 목록을 보면서 계획표를 작성할 수 있었다.

3주 정도 사용하고서야 깨달았다. ADHD 성인에겐 일을 중요도에 따라 구분하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 방식보다는 GTD(Getting Things Done)가 더 낫겠다는 것을.

블로그를 새로 꾸미고 난 뒤부터인 지난 일주일 동안 노션에서 GTD를 구현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노션을 사용한 지는 꽤 오래되었고, 매뉴얼 책도 한 권 보았지만 아직도 초보다. 간단한 기본 기능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들 엄두는 못내고, 누군가 만들어둔 몇몇 템플릿을 둘러 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다. 없을 수밖에! 대체 누가 ADHD까지 생각하는 GTD 시스템을 만들겠는가?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물론 다른 분들의 아이디어 중 필요한 것은 차용했다.

 

얼추 다 만들어간다. 아직 미완성 기능도 있지만 시험적으로 사용해보고 있다.

GTD에 부족하다고 종종 회자되는 과제의 ‘중요도’를 반영했고, ‘언젠가/어쩌면’ 테이블에 인지 행동 치료에서 제시한 ‘포괄 실행 목록’도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효능이 좋다. ‘다음 행동 목록’에서 ‘완료’로 처리되어 사라지는 과제를 보는 것이 즐겁다. 뿐만아니라 ‘다음 행동 목록’에서 ‘언젠가/어쩌면’이나 ‘대기 중’ 테이블로 이동만 시켜도 즐겁다. 당장 해야할 다음 행동 목록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미완성이지만 다음 주부터 만드는 법과 템플릿을 공개할 생각이다. 아, 템플릿보다 취지와 운용 방법이 더 중요한데 정리되는대로 공개할 것이다.

ADHD를 가진 사람은 물론,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