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노션 GTD 시스템 만들기

 

글 좀 써보려고 며칠이나 걸려 블로그를 세팅했는데… 그새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가 블로그는 내버려두었다.

글쓰기를 방치한 데는 약간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생긴지 어언 두 달! 그 동안 일기 비슷한 글을 여러 편 썼다. 이걸 블로그에 옮기려고 했는데, 금방 끝낼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또 ‘ADHD의 암’이라는 ‘미루기 신공’을 발휘했다. 지연될수록 현재 기록과의 거리가 자꾸 멀어지게 되는데도 말이다.

표면적인 문제는 글이 MS워드, 구글 문서, 노션에 흩어져 있는 데다가 두서도 없다는 것이다. 정리가 필요한데, 정리 못하는 게 또 ADHD 특징이니 어떡하나.

근원적인 문제는 결국 ADHD다. 블로그 포스팅은 ‘할 일’의 ‘우선 순위’에서 최상단을 차지하지 못한다. 최우선 순위의 일도 밀려 있는데 그 후순위의 일이야 말해 뭐하랴.

 

그래도, 체계적으로 일을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일 잘하는 사람’들보다는 못하지만 예전처럼 시간을 마냥 낭비하지는 않았다.

ADHD를 가진 것을 알았다는 것은 대책을 세울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책에서는 ‘ADHD를 극복하려는 모든 노력은 반드시 실패를 경험한다’고 했다. <성인 ADHD 대처기술 안내서>(J. Russell Ramsay, Anthony L. Rostain, 2019). 그래, 노력한다고 바로 해결되는 것이면 병이 아닌 것이지!

책에서는 ‘중요한 것은 실패하더라도 다시 노력하는 과정으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노력은 이어갈 생각이다. 이미 실패는 익숙한 것이니까 두렵지도 않다. 이제 내 태도와 행동을 바꿀 것이다. 때론 쉬어가더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걸음에 속도를 내려면 나에겐 두 개의 엔진이 필요하다. 하나는 집중력을 높여주는 약을 먹는 것이다. 먹어보니 효과는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약을 먹는다고 확 달라지는 건 아니다. 조금 높아진 집중력으로 성과를 내려면 엔진이 하나 더 필요하다. 그건 ‘인지행동치료’다.

<성인 ADHD 대처기술 안내서>는 환자 스스로가 인지행동치료를 하도록 하는 매뉴얼이다. 밑줄 긋고 메모하며 열심히 봤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초기 버전은 <안내서>의 제안을 대부분 따르면서 약간의 아이디어를 더했다. 그리고 지난 한 달 가까이 사용했다.

‘노션’으로 만든 시스템은

  • ‘포괄 실행 목록’을 만들어 모든 일들을 기록하고
  • 그 중에서 오늘 할 것들을 ‘일일 실행 목록’에 옮기고
  • 일일 실행 목록에 있는 일들을 ‘일일 계획표’에 할당한 후 실행하는 것이다.

핵심은 과제를 잘 게 쪼개는 것이다. 그 시작점이 특히 중요한데, ‘안 하기가 우스울 정도로 세분화’하는 것이다.

포괄 실행 목록은 ‘아이젠하워 매트릭스’를 사용했다. 중요+긴급, 중요+완급, 사소+긴급, 사소+완급으로 일을 나눴다. 매트릭스는 금방 할 일들로 가득차 어지러웠다. 노션의 ‘토글 목록’을 사용해 깔끔하게 정리했다.

일일 실행 목록과 일일 계획표는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통합했다. 실행 목록을 보면서 계획표를 작성할 수 있었다.

3주 정도 사용하고서야 깨달았다. ADHD 성인에겐 일을 중요도에 따라 구분하는 아이젠하워 매트릭스 방식보다는 GTD(Getting Things Done)가 더 낫겠다는 것을.

블로그를 새로 꾸미고 난 뒤부터인 지난 일주일 동안 노션에서 GTD를 구현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노션을 사용한 지는 꽤 오래되었고, 매뉴얼 책도 한 권 보았지만 아직도 초보다. 간단한 기본 기능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들 엄두는 못내고, 누군가 만들어둔 몇몇 템플릿을 둘러 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다. 없을 수밖에! 대체 누가 ADHD까지 생각하는 GTD 시스템을 만들겠는가?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물론 다른 분들의 아이디어 중 필요한 것은 차용했다.

 

얼추 다 만들어간다. 아직 미완성 기능도 있지만 시험적으로 사용해보고 있다.

GTD에 부족하다고 종종 회자되는 과제의 ‘중요도’를 반영했고, ‘언젠가/어쩌면’ 테이블에 인지 행동 치료에서 제시한 ‘포괄 실행 목록’도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효능이 좋다. ‘다음 행동 목록’에서 ‘완료’로 처리되어 사라지는 과제를 보는 것이 즐겁다. 뿐만아니라 ‘다음 행동 목록’에서 ‘언젠가/어쩌면’이나 ‘대기 중’ 테이블로 이동만 시켜도 즐겁다. 당장 해야할 다음 행동 목록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미완성이지만 다음 주부터 만드는 법과 템플릿을 공개할 생각이다. 아, 템플릿보다 취지와 운용 방법이 더 중요한데 정리되는대로 공개할 것이다.

ADHD를 가진 사람은 물론,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